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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Abel |
| 작성일 | 26-03-23 0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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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가라오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빈곤을 연구하는 인류학자 조문영은 이 책 ;을 통해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것, '당연한' 것, '좋은' 것으로 여겨져왔던 것들에 어떠한 균열과 문제점이 있었는지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기초생활보장법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 그대로 기초적인 생활을 보장해주는 '좋은' 제도로 여겨졌고, 이 법의 수혜를 받는 사람을 솎아내기 위해 소득 및 재산 수준, (실질적인 부양·연락 여부와 관계 없는) 자녀의 유무 등의 기준을 빈자들에게 일관적으로 들이대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많은 국내 대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대학생 대상 해외봉사 프로그램은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는 글로벌 남반구의 사람들을 돕는 행사인 동시에, 대학생들에게 이러한 귀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좋은' 것으로 비춰진다. 아무것도 없던 황량한 벌판에 큰 공장을 세워 오갈 데 없는 청년들,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경제가 가파르고 급격하게 발전해온 동북아시아 국가에서 '익숙한' 일이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익숙하고 당연하고 좋아보이는 광경을 달리 바라볼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개개인의 세세한 삶의 서사를 깊게 들여다보지 못한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생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차를 몰아야 하는 사람은 값비싼 자가용을 보유한, 그래서 빈자에 속하지 않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수급 자격을 잃었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오래 전 이미 자식들과 연락이 끊긴 상태인 사람도, 부양해줄 자녀가 있는 사람으로 둔갑되어 수급의 테두리 바깥으로 밀려났다. 해외 대학생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더 이상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취직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에 청년들의 스펙 경쟁을 위한 도구로 쓰여왔고, 많은 대기업은 자신들의 과오를 덮고 윤리적 기업이라는 레이블을 달기 위해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생들은 자국에서의 ('사회가 정의하는 성공'을 향한) 경쟁적이고 치열한 태도를 봉사 현장에도 그대로 가져갔고, 그래서 세부 행사나 프로그램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거나,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게 갈 경우 여기서 '의미'를 얻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졸였다. 또 '문제점-해결책 도출'이라는 공식에 매몰되어 그 지역의 빈곤을 만들어내는 정치·사회·경제적 역동이 무엇인지, 왜 해결책을 도출해도 거기까지 가닿을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기도 했다. 폭스콘 공장에서의 가혹한 노동환경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스스로 거뒀지만, 이 과정에서 안전하지 않고 불법적인 주택을 올려 돈을 번 사람들은 이미 그 땅을 떠났고, 그렇게 자신들을 부동산 부자로 만들어준 기업을 칭찬하기 바빴다. 저자는 이렇게 빈곤을 둘러싼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빈곤과 불안, 취약함이 단일한 형태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더 이상 임금노동만으로는 윤택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현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아직도 임금노동에 최상위의 가치가 부여되어 빈자를 '자립', '자활', '노력'의 잣대에서 벗어난 악인으로 바라보는 세태를 지적한다. 빈곤에는 '시간성'이 존재함을, 그래서 가난의 굴레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국가의 지원과 재활을 통해 (정부가 원하는) '번듯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아직 한국 사회는 전제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한다. 책 후반부에 나왔던 것처럼, 한 대학생은 남성 노숙인을 무작정 무서워하기만 했던 자신을 되돌아보며, 사회적으로 아직 여성에 대한 차별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자신은 그와 달리 돌아가 몸을 뉘일 집이 있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작가가 기본적으로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기업 주최 해외봉사활동도, 취업 문턱이 너무나 높아진 현실에서 어떻게든 그 문턱을 넘어보고자 분투하는 학생들에게는 하나의 도움닫기, 장대가 되어주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봉사활동 속에서도 빈자들을 위한 봉사와 활동의 방식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자는 가난한 사람은 모두 다 동일한 모습으로 가난한 게 아니라는 것을, 가난의 정도도 제각기 다르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자원의 종류와 보유 정도도 각기 다르고, 그들을 가난의 굴레로 떨어뜨린 원인과 배경도 다 각기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여성과 명문대 학생, 남성과 노숙인이라는 지위가 서로 뒤섞이며 취약한 사람들 사이에 절대적이고 영속적인 위계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이렇게 익숙한 것을 익숙치 않게 바라보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양태의 가난과 취약성을 탐구하려고 했다. 서울 신림구 난곡동에서 중국 선양까지, 중국 선전에서 서울 용산구 아랫마을까지, 한국과 중국의 여러 지역을 오가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어떻게 취약한 사람들을 더욱 더 가장자리로 몰아내고 있었는지 주목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양상을 들추는 데에만 천착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다 같이 연결될 것을 역설力設한다. 한국의 복지체계가 지금보다도 헐겁고 허술했던 시절, 달동네에서는 동네 주부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한데 모여 돈이 없어 산부인과에 못 가는 임산부를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반反빈곤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여린 몸을 강제철거 반대 시위에 투신했다. 저자의 수업을 통해 타인의 취약함을 맨눈으로 들여다본 학생들은 그 모습에 더욱 강하게 연루되기 위해 사회운동과 연구의 길로 나아가기도 했다. 작가 역시 책의 말미에서 이러한 서로 간의 (각자의 조건, 배경, 상황을 넘어선) 연결, 상호 얽힘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자인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빈곤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 각자가 가진 빈곤과 불안, 취약성의 조건과 원인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각기 다른 약자들이 서로 모여 분연히 일어나야 그 울퉁불퉁하고 불규칙한 빈곤·불안·취약성의 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빈곤은 어디에나 있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물질적 결핍에서 출발해 그 조건, 인식, 감각을 포착해내려 한다면 빈곤의 '외부'를 찾기가 더 어렵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빈곤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우선 나와 내 가족의 삶에 달라붙을 수 있다. 배고픈 삶, 전망 없는 삶에서 기어 나오는 공포, 분노, 무력감이 자기비하로, 피붙이에 대한 폭력으로 치닫는다. 쪽방촌, 고시원, 다세대주택, 임대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지척의 가난을 보고, 듣고, 냄새 맡는다. / 지긋지긋한 빈곤에서 빠져나왔다고 안도하기엔 이르다. 유명 배우, 감독, 정치인이 되고 세계적인 명망을 얻어도 '불우한 시절'의 꼬리표가, 인생 역정의 서사가 따라붙는다. 근거리에서 포착되지 않는 가난은 미디어를 거쳐 우리에게 접속된다. 생활고를 비관해 목숨을 끊은 가족, 엄동설한에도 전기장판을 마음 편히 들여놓을 수 없는 쪽방 주민, 코로나로 인한 봉쇄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바이러스 감염보다 굶주림에 더 시달리는 이주자의 이야기를 우리는 수시로 접한다. 어디 인간뿐인가. 자연에 대한 수탈과 착취에 따른 비인간 생명의 아우성은 전염병, 홍수, 산불 등 인간이 포착 가능한 형태로 번역되어 극히 일부분일지언정 그 모습을 드러낸다. / 이런 세계에선 누구도 빈곤의 천태만상을 멀찍이서 바라만 보는 위치에 있을 수 없다. 봉사자, 활동가, 정책 실무자, 연구자, 예술가, 기자 등 빈곤을 어떤 식으로든 재현하고 쟁점화하는 매개자mediator·대화자interlocutor 집단은 빈곤 문제의 해결이 요원해 보일수록 역설적으로 증가했다. 정부는 선별적 포섭, 보호, 배제를 제도화하면서 공공부조 수급자에서 난민·이주자에 이르기까지 빈자를 식별하고 등급화한다. 지구상의 공유부commons를 상품화하고, 인간 생명을 인적 자본으로 취급하며 경쟁을 독려해온 기업은 고도로 산업화·전문화된 반反빈곤 네트워크의 젖줄이 됐다. 이들은 사회공헌, 윤리적 자본주의, 임팩트 투자, 환경·사회·거버넌스ESG 등 시기별로 다양한 구호를 변주해가면서 빈곤산업의 언어와 문법을 '혁신'하고, 다수의 빈곤을 초래한 대가로 축적한 자본의 극히 일부를 정부, 대학, 비영리재단, 시민단체에-세련된 퍼포먼스와 함께-재분배한다. 나를 포함한 시민 대중도 빈곤의 연결망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알아서 살아남기를 강요하던 국가 통치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족 바깥의 삶에 대한 무심함을 내면화한 채 '쓸모없는' 생명의 축출을 직간접적으로 돕는 공조자다. 주가와 부동산이 오를 수만 있다면 해고, 철거, 산업재해, 환경 파괴를 적당히 눈감고, 쓰레기 소각장, 축사, 심지어 복지 기관까지 '혐오 시설'이라 부르며 빈곤과의 물리적 거리두기에 안간힘을 쓴다. 아프리카 아동이 후원의 보답으로 보낸 손편지에 감동하면서도, 자녀가 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어울리는 것엔 신경이 쓰인다. / 그러나 우리가 이 모든 얽힘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외면한다면 빈곤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이 된다. 창문도 없는 비주택에서 살다 화마로 사망한 국일고시원 거주자, 지병과 빚으로 어려움을 겪다 부패한 시신으로 발견된 수원 세 모녀, 폭우로 침수된 반지하 주택에서 구조를 요청하다 숨을 거둔 신림동 가족까지 가난한 사람들은 대개 주검이 되어서야 세인의 관심을 끈다. 학생들은 나를 찾아와서 종종 민망해하면서 말한다. "살면서 빈곤을 본 적이 없어요." 비슷한 무리끼리 공부하고 어울리게끔 학교와 지역 공간이 계급화된 탓이다. 엘리트 대학에 가까스로 진입한 저소득층 학생은 수도권 중산층의 생활 양식이 기준이 된 대화에서 번번이 가위눌림을 겪다 스스로 고립을 택할 때가 많다.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인권 제도 개선의 중대한 실험장이 된 곳도,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2019)로 남지 않겠다는 학생들의 세심한 노력이 돋보이는 곳도 대학이지만, 그 공간에서 여전히 어떤 학생은 제 가난이 친구들한테 알려지는 게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숱한 제도적·실천적 개입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결핍이란 지워내야 할 불운, 수치, 숙명으로 남았다. 그런 점에서 빈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연구·운동·정치의 초점이 되는 빈곤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으며, 물질적·담론적·정동적 힘이 얽히는 과정에서 변모한다. 빈민을 20세기 사회보장(공공부조)을 통해 획정된 수급자와 동일시하는 흐름은 국내외 빈곤 연구에서 여전히 관행으로 남아 있지만, 이 책에서 나는 물질적 결핍이란 조건과 가난함에 대한 인식 및 감각 사이의 불일치에 주목하면서 (서로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는) 빈곤 경험의 지층들을 헤집고, 빈자의 외연을 확장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현행의 '빈곤 레짐'을 구체적으로 탐색하고 비판하는 작업, 이 레짐을 닫힌 구조로 남겨두지 않고 새로운 변화와 가능성에 열린 어셈블리지assemblage을 모두 포함한다. 제도, 법규, 지식, 기술 등 일련의 장치들이 행위자와 관계 맺는 가운데 특정한 주체(성)가 형성되는 장을 레짐regime으로 본다면(아감벤 2010푸코 2011), 빈곤에 대한 인식과 감각의 형성도, 빈곤 경험의 재현과 빈곤 문제의 공론화도 모두 한 시대의 빈곤 레짐과 관계하면서 이루어진다. 빈민이 선험적으로 정의되는 이들이 아니라 하나의 집단으로 굽군된 다음에야 그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라면, "빈민의 특징, 능력, 욕망을 규정함으로써 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구성하는 활동"(크룩섕크 2014: 223) 역시 빈곤 레짐이 작동한 결과다. (중략) 나는 빈곤 레짐에서 작동하는 미시권력의 견고한 힘뿐 아니라 권력 관계의 취약성, 우발성, 불확실성에 대한 분석에도 매료되었다. (중략) 내가 빈곤 레짐의 규범화된 지식이나 통치 양식을 거스르는 실천을 현장에서 발견하고, 빈곤 레짐이 빈민을 주체화하는 방식의 대항 서사로서 빈자의 문화기술지ethnography를 쓰고, 빈곤 레짐에서 익숙하게 반복하는 담론 구조를 답습하는 대신 참여자-연구자로서 다른 실험과 실천을 시도하는 작업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정동정치(affective politics): Brian Massumi가 제시한, 감정과 감각, 분위기, 몸의 반응과 같은 비이성적이고 비의식적인 차원이 정치적 현실과 권력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주장에 기인하는 개념. / 여기서 정동(affect)는 감정(emotion)과 다름. 감정은 "나는 화가 났다"와 같이 언어로 명명되고 의식적으로 인지된 상태인 데에 반해, 정동은 감정이 되기 전의 신체적, 자동적, 무의식적 반응임(누군가에게 위협을 느껴 몸이 움츠러들거나, 갑자기 가슴이 뛰는 반응 등). 정동은 비언어적이고, 즉각적이며, 전염성 있는 힘으로, 타인에게도 쉽게 퍼지고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함. / 정동정치란 이러한 정동이 정치적 통치와 권력 행사, 대중 동원에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분석하는 개념. Massumi에 따르면, 현대 정치는 사람들의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 공포, 희망, 불안 같은 정동적 반응을 유도하고 조작하여 사회를 통제하는 경향이 있음(정동은 이성적 판단보다 앞서며 쉽게 조작될 수 있고(비의식성), 타인에게 빠르게 전파되어 집단 행동의 영향을 주기 때문에(사회적 전염성)). (예) 테러 위협을 강조해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고, 이에 기반해 강경한 안보 정책을 정당화, 정치 지도자들이 카리스마적 이미지를 통해 지지자들의 감정적 충성심을 유도, SNS를 통한 분노의 확산·정치적 양극화·정체성 기반의 동원 → Massumi가 주장하는 "정동 정치Affective Politics"란 '감정과 분위기를 조작 및 동원하는 정치 전략'으로서, Massumi는 이 정동 정치가 즉각적 반응과 감정적 동원을 우선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비판적 사고가 무력화되고, 공적 담론의 질이 저하되는 등 민주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경고함.* 정동경제(Affective Economy): 정동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하나의 생산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는 개념. 감정, 분위기, 공감, 두려움과 같은 정동이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어 소비와 생산을 자극하고, 상품화된다고 주장. 즉, 사람들의 감정과 감각을 자극해 돈을 벌 수 있는, 정동 자체가 자본의 대상이 되는 경제구조를 의미. (예) 1. (소비자 마케팅) 광고가 단순히 제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행복, 사랑, 안정, 자유)을 자극해 소비를 유도 - 카페 브랜드가 힐링, 감성을 강조 → 실제 제품보다 정서적 경험이 판매되는 것. / 2. (팬덤 경제) 연예인 팬덤은 단지 콘텐츠 소비가 아니라, 감정적 충성도를 자산화함. - 굿즈, 스트리밍, 팬사인회 등에서 정서적 연결이 경제적 행위로 변환 / 3. (정치에서의 정동경제)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감동 스토리 광고, 국민과 함께 웃고 우는 장면 연출도 정동의 소비화 - 시민의 감정을 자산화하여 지지로 환산하는 정치적 전략 이 책의 1-2장은 빈곤에 대한 논의와 대응이 '복지'라는 빈곤 레짐에 포획되면서 생겨난 문제를 다룬다. 빈곤-복지 연합이 노동, 발전, 자립·자활, 의존(성) 등에 대한 지배적 규범을 재생산하면서 빈자에 대한 낙인과 폭력을 강화하는 과정을 담았다. 1장에서는 유럽·한국의 사회보장 역사에 대한 검토와 서울 난곡 지역 현장연구를 토대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작동하는 수급의 의미와 효과를 논한다. 기초법은 사회정의와 연대를 위해 한국 시민사회가 오래 노력한 성과이나, 복지-특히 공공부조에 해당하는 수급-가 '관료-기계'로 작동하면서 가난에 대한 감각, 인식, 서사, 논쟁, 투쟁을 마름질하는 현 상황은 빈곤의 정치적 의제화를 곤경에 빠뜨린다. 2장에서는 의존이 인간의 생존과 실존에 있어 고유한 양태임에도 사회적 '문제'로, 빈자의 품행과 습속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기제로 작동하게 된 맥락을 살핀다. 의존 담론에 관한 계보학적 접근과 서구중심적 자율 담론에 대한 인류학적 비판을 소개하고, '낙인으로서의 의존'이 역사적으로 자연스러운 경로도, 불가피한 귀결도 아니었다는 점을 두 사례를 통해 보여줄 것이다. 그 하나는 중국 둥베이지방 노동자들의 생활 세계에서 의존의 의미가 변화하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자활이 복지 수급과 접속하기 이전에 상호의존으로 번역되었던 한국 빈민운동의 역사다. / 3-4장은 내가 오랜 시간 동행한 두 중국 여성에 대한 문화기술지다. 가난한 사람의 삶은 빈곤 레짐과 부분적으로만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나는 빈자를 몇 가지 범주를 중심으로 약자 내지 피해자로 단정 짓기보다, 그들이 다른 사람, 제도, 지식, 매체 등과 연결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빈곤을 더 무겁게 짊어지게 되었는지, 소외에 저항하는 필사적인 노력이 어떻게 역설적으로 새로운 소외를 낳았는지 보여줄 것이다. 3장에서는 중국 선전 폭스콘 공장지대에서 처음 만난 여성의 6년에 걸친 노동 궤적을 도시와 농촌, 임금과 비임금, (재)생산과 분배, 온라인과 오프라인 노동이 교차하는 '사회적 공장'에서 탐색한다. 여기에는 노동과 빈곤, 노동자와 복지 수급자를 구분하며 양자를 다른 층위로 바라보는 지식 생산 지형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4장에선 중국 하얼빈에서 폐품을 수집하며 살아가는 농민공이 농촌의 토지를 되찾기 위해, 도시의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가 정부, 이웃, 농촌 시댁, 도시로 함께 이주한 친정 식구와 맺는 복잡한 관계를 좇으면서, 나는 가난한 여성이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를 제지당하거나 자기를 검열하게 되는 상황을 '자격'에 대한 물음 속에서 살폈다. 가난한 개인이 그 자체로 '세계'가 되는 문화기술지에서 빈곤은 부단한 과정이자 고된 분투로 등장한다 / 5-6장에서는 21세기 들어 부상한 글로벌 빈곤 레짐의 의미와 작동을 살피고, 실존의 불안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자원봉사자로서 글로벌 빈곤 퇴치의 책무를 자임하는 역설을 논한다. 9·11테러 이후 글로벌 남반구의 빈곤이 북반구의 안전을 위협하는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반복되는 경제 위기에 대한 기업의 생존 전략으로 '윤리적' 자본주의가 주목받는 화정가라오케 가운데, 글로벌 빈곤을 쟁점화한 통치는 인류 공통의 임무로, 국제기구·정부·기업·비영리 재단의 초국적 네트워크로, 국제개발 및 자원 활동의 무대로,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적극 가시화되어왔다. 정부·기업·대학의 긴밀한 공조하에 이 레짐에 접속한 한국 대학생-청년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환부'에서 새로운 지식, 아이디어, 정동affect을 창출하는 '프런티어'로 거듭난다. 5장이 글로벌 빈곤 레짐의 통치성에 관한 분석이라면, 6장은 한·중 대학생으로 구성된 한국 대기업 자원봉사단이 중국에서 벌인 활동에 대한 문화기술지다. 일방적인 선물을 거부하는 중국-국가, 전략적 이익에 몰두하는 기업, '진정성 게임'을 반복하는 실무자, 타인의 빈곤보다는 자신의 불안을 치유하고 싶어하는 한국 학생, 빈곤의 내부고발자를 자처하는 중국 학생이 뒤엉킨 현장은 빈곤 레짐의 통치성에 대한 정돈된 비판을 거스른다. / 7-8장은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보여준 이 같은 실존의 결핍을 불안정성에 대한 논의로 확장한다. 아시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일상에 들러붙은 불안의 정동은 빈자와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빈곤과 취약성precarity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빈자-수급자에 편중된 빈곤 연구는 빈곤을 모두의 의제로 다루는 작업을 제약하며, 오늘날 취약한 삶들이 부단히 마주치고 때로 반목하는 현실을 볼 수 없게 만든다. 7장은 중국 둥베이 선양의 한인 타운에서 하향 이동과 실패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한국인 이주자들에 관한 문화기술지다. 상호의존이 절실한 이주자들 사이에서 의존이 오염의 지표로 등장한 맥락을 한국인 영세 자영업자, 조선족, 탈북민 관계의 부침 속에서 살핀다. 불안정성에 대처할 자본이 부족한 사람들은 비합법적 관계망에 연루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낙인의 대상을 자의적으로 구별하며 스스로 안전과 정상성을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8장은 수업에서 학생들과 진행한 프로젝트를 연구 현장 삼아 프레카리아트 사이의 마찰과 위계를 탐색한다. 교육·문화·자본을 갖춘 대학생-청년의 불안에 깃든 우울과 열망이라는 양가성에 주목하면서, 이들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가 반빈곤 활동가와 대화하며 도시 빈민이라는 다른 프레카리아트와 마주치는 상황의 긴장을 담았다. 여기서 문화기술지는 나와 학생들이 빈곤에 대한 문제의식, 비판과 성찰, 개입을 확장하는 실험이자 운동이 된다. 중국학 연구자라면, 중국을 화두로 축적된 연구들이 현장에 관한 서술에서 충분히 등장하지 않은 점을 의아해할 수 있다. 국경은 빈곤을 탐색하기 위한 여러 경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빈곤 레짐의 기존 배치를 문제 삼으면서 새로운 배치를 만들어가는 일은 빈곤을 개별 학문 분과의 언어와 문법에 종속시키지 않고 다학제적 대화의 주제로서 재발견하는 작업이며, 동시에 지역학의 경계를 허무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국과 중국에서 빈곤·노동·청년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나는 역사적 궤적에 따른 양국의 차이뿐 아니라 그 공통성에도 주목해왔다. "현시대를 이해하는 데 진정으로 유용한 요소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점이 아니라 사람과 장소, 경제의 유사성과 그로 인한 결과"라는 사스키아 사센(2016: 23)의 주장에 공명하면서, "글로벌 이동의 확대, 일과 삶 전반에서 불확실성의 증대와 같은 일련의 변화들이 세대, 지역, 계급, 젠더 등 다양한 층위에서 교차하는 가운데 펼쳐지는 청년 세대의 풍광"을 마주침의 인류학을 통해 적극적으로 제안해오기도 했다(조문영 2019b: 118-119조문영 2021c). (중략) 국경을 관통하는 빈곤의 무게 내게 빈곤 연구란 우리 시대의 빈곤을 단순히 기록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빈곤을 어떤 방식으로 쟁점화하거나 외면했는지 톺아보면서 '빈곤을 어디로 가게 할 것인가'를 부단히 질문하는 과정이다. 반빈곤운동 진영은 지난 20년 동안 불합리한 수급 체제에 질식해 죽어간 사람들, 이 체제에 맞서다 죽음을 택한 사람들을 불러냈다. 끈질긴 외침에도 수급이 살 만한 삶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충분히 개선되지 못한 현실을 지적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는 무관심과 차별 사이에 머물며, 정치적 수사와 예산 압박을 오가며, 엄격한 자격 심사와 최소한의 지원 수준으로 타협되었다." 유럽의 사회보장 시스템은 이러한 사회문제들을 시장이나 개인의 도덕성에 맡기지 않고 사회적 연대를 통해 관리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탄생했다. 생명체인 인간을 기계처럼 취급하는 자본주의에 보완장치가 없다면, 노동자가 내일도 오늘과 똑같이 일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실업수당, 산재보상을 통해 노동력의 재생산을 확보하고 사회 전체가 이에 따른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는 식의 연대는 경제적으로 유용했을 뿐 아니라, 냉전 상황에서 정치적으로도 긴요했다. "시장경제 체제의 자기조정에 내재한 재난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게 사회의 책무가 된 것이다(폴라니 2009: 248). / 한국의 정치권이나 학계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약 30년간 만개했다가 신자유주의의 시장화의 결과 쇠락한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을 보편적인 이념형, 심지어 이상형으로 취급하곤 한다. 이를 단지 유럽중심적 지식 생산에 대한 비판으로 끝낼 일은 아니다. 유럽의 특수한 복지국가 체제는 한국 복지가 따라가야 할 선진으로 일찌감치 추대되었지만, 이 체제의 발전 과정에서 제기된 비판과 드러난 모순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게 문제다. 적어도 두 가지 쟁점이 떠오른다. 첫째, 사회보장이 계급 착취의 근본 문제를 건드리지 않은 채 (사회주의 같은) 급진적 혁명의 가능성을 통제 가능한 변화의 수준으로 고착시켰다는 비판이다(동즐로 2005서동진 2014Supiot 2013). 자크 동즐로는 프랑스에서 사회보장을 실행할 필요성이 공화주의의 이상과 민주주의의 제도적 형태가 마주친 1848년 혁명 직후에 등장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사회의 실질적 삶과 정치적 열정을 쇠퇴시킨 주범으로 복지국가를 지목했다. "사회의 연대적 유지에 의해서만, 사회적 결집 요구에 대한 개인의 복종에 의해서만, 따라서 개인보다 우위에 있는 원리로서 사회보장을 인정함으로써만 진보가 있을 수 있었다(동즐로 2005: 2019-2020)." / 다나카 다쿠지는 동즐로가 19세기 자유주의 사상 내부의 혼종성을 무시한 채 규율 권력의 강화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비판하면서도, 사회적 연대에 깃든 양가성은 인정했다. 위험risk의 사회화라는 논리에 기초한 연대 사상은 개인을 전통 집단에 대한 의존에서 해방시키는 한편, 개인을 "질서유지에 적합한 존재로 규율하는 논리"를 도입했다(다나카 2014: 239)./ 둘째, 사회보장 시스템은 빈곤을 실업, 질병, 노령화 등 노동능력 상실에 따른 문제로 파악하면서 '노동'을 가치판단의 절대 기준으로 삼는다. 노동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빈민을 강제 노역으로 내몰았던 1600년대 영국 구빈법 체제와 비교했을 때, 이러한 제도가 사회연대에 기초해 빈곤 인구를 관리하고, 이들에게 실업·질병·주거 급여, 노령연금 등 사회보장급여를 확대한 점은 역사의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나 노동을 통한 생계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만 사회부조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가장 보편적인 복지 모델을 유지해온 스웨덴에서조차 그대로 유지되었고(임완섭 외 2015: 50), 사회복지의 급여 수준이 노동시장의 최저임금 수준보다 더 낮아야 한다는 열등 처우의 원칙은 영국의 19세기 신구빈법 이래 사회복지의 상식으로 정착됐다. 노동능력의 결여를 수급의 조건으로 삼는 공공부조는 결과적으로 (2장에서 논할) 노동 대 빈곤, 노동자 대 빈자라는 이분법을 고착시키면서 후자의 열의를 정당화했다. / 노동의 강제적 필연성에 대한 한나 아렌트(1996)의 비판은 차치하고라도, 사회보장 시스템의 노동중심성은 노동의 범위를 임금노동으로 축소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한 가정에서 건강한 성인 남성이 임금노동을 수행하는 '부양자' 모델로 가정되고, 여성은 온종일 수행하는 비임금 돌봄노동을 인정받지 못한 채 '피부양자'로 남았다. 제임스 퍼거슨(2017)이 유럽의 사회보장을 정규직 남성 임금노동자와 그 가족만을 상대로 사회적 돌봄을 제도화했던 불완전하고 가부장적인 구성물이라고 비판한 이유다. 이렇게 협소한 임금노동조차 자산불평등이 소득불평등을 압도해버린 금융자본주의 시대,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하거나 질 낮은 플랫폼 노동을 양산하는 첨단 기술 시대로 이행하면서 그 위상이 급속히 쇠퇴하고 있다. 하지만 줄어든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과열되면서 노동은 공정의 기준으로 재차 소환되고, 수급자의 도덕성을 심문하는 논리로 여전히 지배력을 행사 중이다. 시장경제의 파괴적 효과로부터 삶의 지속과 안정을 어느 정도 보장받기 위해 발명된 담론적·물질적·제도적 구성물을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라 할 때, 한국의 사회적인 것은 집합적 연대를 토대로 한 사회보장이 아닌 개별 가족의 생존 전략을 핵심으로 했다. 일부 중산층은 기업 복지에 기댈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노동시장에 고용되어 임금을 받거나, '비공식' 경제에 참여해 부족한 소득을 벌충해야 했다. / 하지만 글로벌 남반구와 달리, 한국의 가족중심 생존 전략은 발전주의 국가의 적극적인 동원과 지원을 통해 뒷받침되었다. 동아시아를 복지의 저발전 내지 지체로 보는 주류 경향에 반대하면서, 김도균(2019)은 한국과 일본이 공적인 사회보장 지출에 소극적이었으나 경제성장에 적합한 방식으로 '복지 대체 수단'을 발전시켜왔음을 논증한 바 있다. 소득공제를 확대한 재정 복지, 저축 기반 복지, 토건 사업을 통한 고용 창출이 이에 해당된다. 조세·금융·산업 정책이 사실상 복지 정책이기도 했다는 얘기다. 특히 가계 저축은 가족주의적 생존 전략이자,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기 위한 국가의 자본 동원 전략이었다. 국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조직된 '여성-주부'는 이 시스템을 떠받친 동력이었다. 이들은 '현모양처'로서 근검·절약을 통해 내핍 생활을 조직하고, '복부인'의 낙인을 감수하면서 부동산 투기의 최전방에 섰다(김도균 2018최시현 2021). / 이러한 국가주도하의 사회 통치는 복지를 통합과 연대가 아닌 선별적 포섭과 배제, 사회적 버림의 표상으로 만들었다. 공무원연금법(1960), 군인연금법(1963),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1973) 제정에서 보듯, 정권은 체제 수호에 핵심적인 직업 집단을 제일 먼저 포섭했다*. 고학력·고숙련 인력도 경제개발에 유용했다. 북유럽의 사회보장이 조세 부담을 높이면서 전 인구를 수혜자로 삼은 것과 달리, 한국의 자산 기반 복지는 저축과 소득공제를 실질적 복지 수단으로 삼은 까닭에 수혜 집단이 중산층과 고소득층에 집중되었다(김도균 2018: 84). 서구의 사회보장이 제도 시행 과정에서 먼저 포용했던 빈곤층과 노동계급은 한국의 사회보험제도에서는 거의 배제되었다. 남북한 체제 경쟁의 결과 의료보험 제도가 1977년에 출범했으나, 농어민과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에게 적용된 것은 민주화 이후인 1989년의 일이다. 해방, 전쟁, 분단, 군사쿠데타를 거치면서 노동계급은 "(서구와 달리) 포섭적 복지 전략의 대상이 아닌 반복지적 억압 전략의 대상"일 뿐이었다(조성은 외 2019: 153). 빈곤층의 배제도 심각했다. 1953년에 사회부는 공공부조인 '국민생활보호법'을 도입하려고 했으나 재정상의 이유로 국회에 상정되지도 못했다. 1961년 '생활보호법'이 제정되었으나, 이 법은 1944년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조선구호령'과 대동소이했을 뿐 아니라, 18-65세 연령층,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처음부터 보호 대상에서 제외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생활보호법 대상이 되어 최저셍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원으로 연명하거나, 노동능력이 있는 영세민이라면 '새마을 일'로 통용되는 취로사업에 참여해 미미한 일당을 현금이나 밀가루로 받았다. 국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시설에 감금되고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이도 부지기수였다. 부랑인에 대한 강제 단속 및 구금은 '형제복지원 사건'이 공론화된 1987년에야 폐지되었다(최종숙 2021: 292). / 이런 역사에 비추어 보자면, 21세기 벽두에 등장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의의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 (중략) 이에 따라 기존 생활보호법의 인구학적 기준이 철폐되고 소득평가액에 따른 대상자 선정 방식이 도입되었다. 노동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도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수급 자격을 얻었다. (중략) 까다로운 수급 조건과 낮은 생계급여에 따른 분노는 곧바로 기초법 개정운동으로 이어졌다. 월 28만원으로는 임대아파트 관리비와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1급 뇌성마비 장애인 최옥란이 생계급여를 반납하고 명동성당 앞에서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을 시작한 게 기초법 시행 이듬해인 2001년 12월이다. / 기초법의 뒤늦은 출범, 곧바로 개정 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제도의 빈약함을 돌아보면, 21세기의 새로운 민주 정부가 발전국가의 유산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시민단체의 기초법 제정운동을 과소평가할 수 없지만,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가 사회적 보호를 위한 정책을 확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행위자는 역설적이게도 IMF와 세계은행이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려면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안전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신광영 2002: 71-72). 결국 '생산적 복지'란 경제성장 중심의 정책 결정을 주도해온 행정 관료들이 복지를 국가 경쟁력 제고의 수단으로 길들이는 과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 더구나 이 법에 대한 사회적 열망이 대단했던 것도 아니다. 노동조합은 공공 부문 민영화와 대량 해고에 반대하며 일자리 투쟁을 전개했지, 국민 일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복지 제도엔 큰 관심이 없었다(신광영 2002: 17). 강단의 좌파도, 철거반대 투쟁에 주력해온 빈민운동 진영도 복지라는 화두에 떨떠름했다. (중략) 그렇다고 (19세기 프랑스와 달리) 사회주의가 억압되고 계급정당이 부재하는 나라에서 계급 정치의 꿈을 품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응집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공공복지 수준이 낮은 발전국가 체제에서 가족중심의 생존을 위해 분투해온 일반 시민들 역시 자신들과 무관해 보이는 빈곤층 대상 정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들은 개별 가족으로 흩어진 채 한국 복지의 지배적 규범으로 정착한 '자산 기반 복지(김도균 2018)'를 확보하는 데 매진했다. 한 세기 전 유럽에서 탈정치적 해법이라는 혐의를 받았던 '사회적 연대'는 한국에서 이제 불가능한 꿈의 언어로 등장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삶의 불안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태를 앞두고 (...) '국가의 실패' 혹은 '정치의 실패'만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는 문제, 즉 '연대의 실패' 혹은 '사회의 실패'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박해남 2014: 355-356)."* 산업재해보상보험법(1963)은 비교적 일찍 마련되었는데, 실업보험과 달리 근로 의욕을 저하시키지 않고 고용주 단독 부담이라 국가 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초법은 기존의 생활보호법과 달리 연령 제한을 없애 더 많은 사람을 지원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복잡했다. 새로운 법 시행을 앞두고 재정경제부가 적자를 우려해 복지부에서 올린 예산을 삭감하면서, 수급 대상자 수는 1999년 (생활보호법 대상이던) 192만 명보다 줄어든 153만 명으로 책정됐다(류정순 2001: 296). "몸에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추는" 행정이었다(신명호 2020: 36). (중략) 하지만 당시의 기초법은 기존 생활보호법처럼 "직계혈족 및 생계를 같이 하는 2촌 이내의 혈족"을 부양의무자 범위로 정하고, 부양의무자의 소득·재산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재산도 1-2인 가구 2900만 원, 3-4인 가구 3200만 원, 5-6인 가구 3600만 원(실거래가) 이상이면 수급 자격에서 제외하는 규정이 신설됐다. 기존의 생활보호·한시생활보호제도에는 없던 토지 소유, 주거 면적 기준까지 상세하게 마련됐다. 승용 목적으로 자동차를 소유한 가구도 제외키로 했다. 과거에는 없던 조건들이 새로 추가되면서 기존 생활보호자들도 불안해지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1982년 생활보호법이 개정되면서 "근로능력자를 가진 생활보호대상 세대"가 '자활보호자'로서 지원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 범주에 포함되어 취로사업에 참여해온 노인들은 "9월이 지나면 취로 못하는 거냐"며 수시로 사무실을 찾아왔다. 하지만 생활보호법이 기초법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과거처럼) '노력'을 해서 결과를 바꿔낼 여지가 거의 사라졌다는 데 당혹해했다. 기존의 생활보호법과 비교해서, 기초법은 일선 공무원의 관료-기계로서의 성격을 한층 강화했다. 레비 R. 브라이언트에 따르면, 관료-기계는 일정한 양식에만 열려 있다. 양식은 그 자체로 입력물(질병, 장애, 집, 가족, 일, 빚 등)에 조작을 가하여 "어떤 조직적인 소통 매체로 변환하는 기계"다. 사전에 규정된 특정 기준에 따라 양식에 적시된 것만 전달 가능하므로 "우리의 사람됨, 우리의 처지, 우리의 삶은 양식에 의해 사전에 규정된 범주에 따라 분쇄되고 걸러진다(브라이언트 2020: 93)." 신청자의 구구절절한 말과 망가진 몸은 각종 서류 '양식'을 통해 인증을 받고, '기계'를 통과해야 심사 자격을 얻는다. 난곡 주민들이 수급자 신청을 하거나 생활보호자 재심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관료-기계와의 마찰은 계속되었다. 특히 가족의 부양 책임을 당연시한 부양의무자 조사에서 마찰음은 더욱 심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찌감치 가족관계가 소원해진 이가 태반인데도, 정부는 부부와 미성년 자녀로 구성되어 성역할을 분담하고 사회적 재생산을 책임지는 '정상 가족' 모델을 부양의무제라는 형태로 가난한 사람들한테 강요했다. 하지만 선의에서 출발했다 해도, 부양의 책임을 개별 가족에 전가하면서 그들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감시policing가 왜 빈자한테만 당연해졌는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더욱이, 특정인을 골라 후원을 연결하고 '도덕적' 빈자의 표상을 강화하는 미봉책은 가난의 낙인을 강화하고, "왜 쟤만 주고 나는 안 주냐"는 험담을 유포시키며, 가난을 '연행'하는 무대로 주민들을 끌어들인다. 이 무대에서 주민들은 자신의 생계 조건 자체를 자원화하고, 외부로부터 규정된 가난의 상에 스스로를 편입시키기도 한다. 이 모습이 일선 공무원, 복지사, 후원인, 비슷한 처지의 이웃, 나 같은 연구자한테 계속해서 노출되며 평가받는 일이 반복될 때, 가난은 난치難治를 넘어 불치不治의 병으로 비화한다. 하지만 그 학회 토론자는 2010-2011년 화정가라오케 복지부가 행복e음을 통해 복지 급여 대상자 확인 조사를 실시한 결과 44만8900명이 수급 자격을 잃었고, 그중 기초생활수급자가 11만6000명에 달했다는 점, 이전에 부양 관계 단절을 입증했거나 단절을 인정받아 급여를 보장받아온 이들도 수급 중단 통보를 받았다는 점, 그 일부는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고 하소연할 방도를 몰라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는 점을 알까? 전례 없이 강력해진 관료-기계는 복지 대상자에게 추가 지원이 가능한 서비스를 안내한다고 하지만, 방점은 "부정수급 예방·방지"와 "중복 급여 차단"에 놓여 있다. 부정수급은 언론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면서 어느새 대중적인 단어로 자리 잡았다. 캐나다 주 정부가 운영하는 부정수급 고발 핫라인을 연구한 매슈 D. 상카르티에는 이 시스템을 '비난 테크놀로지Denunciatory Technology'라 불렀다. 대중 자체를 통치의 도구로 삼으면서, 국가는 숨어 있는 '적', 숨겨진 '비밀'을 캐내도록 시민들을 부추기고, 동료 시민을 서로 고발하는 통로를 열어준다. 한국의 국민권익위원회도 '부패공익신고' 항목 아래 '복지·보조금 부정수급'란이 마련되어 있다. "청렴하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누구든 위반 사실을 알면 신고하도록 장려된다. 실제로 권익위는 2014년 신고센터 설립 100일을 맞아 100억 원에 이르는 복지 부정수령액을 적발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이들이 낸 성과 보고서를 보면 100억 원 중 97억 8천만원은 병원 사무장과 사회복지시설 등 기관 비리에 의한 것으로, 기초생활수급비 부정수급으로 적발된 돈은 7000만 원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권익위 사이트의 존재만으로 시민은 "복지 부정수급자의 삶을 재현된 그대로 믿거나, 이들의 삶을 모르는 집단으로 양분"되며, "부정수급을 알아야 하는 게 대중의 책무인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Sanscartier 2017: 76). / 기초법 제정 후 20여 년 동안 상당한 개선이 이뤄진 점도 부인할 순 없다. 정부는 부양의무자 범위를 축소하다가, 2017년부터는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를 추진했다. 그렇게 2015년 교육급여, 2018년 주거급여, 2022년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다. 2015년부터는 상대적 빈곤 개념을 도입해 생계급여 보장 수준을 최저생계비에서 기준중위소득으로 개편했다. (중략) 물론 정부 예산을 먼저 정하고 대상자 수를 조정하는 관행은 여전히 그대로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가구는 전체 인구의 7-8퍼센트 정도이지만, 실제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는 가구는 약 3퍼센트에 불과하다(신명호 2020: 37).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은 너무 빨리 잊혔다. 경제 불안정성이 커지고 제 가난을 '도둑맞았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심해지면서, 망각의 자리에 낙인과 혐오가 쉽게 둥지를 틀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줄임말인 '기생수'가 가난을 개인의 무능으로 조롱하고 수급자의 '거지 근성'을 비난하는 표현으로 학교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출몰하는 세상이 됐다. / 이 수급 '안'과 '밖' 사이의 심연을 당장 메우기는 어렵다. 기초법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제도가 존속하는 한 계속되어야 한다. 수급에서 탈락한 가난한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이의 신청 절차에 관한 정보이지 빈곤에 관한 철학적 물음이 아니다. 또한, 정치적·윤리적 설득을 통해 관료-기계의 조작 원리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미적분학을 고양이에게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브라이언트 2020: 120), 긴급한 사안이라면 수급의 기술 통치에 맞춤화된 논리와 언어를 이용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수급자로 분쇄하고 걸러내는 작업이 가난을 고이게 하고, 곪게 만든다면, 수급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빈곤에 대처하도록 유도하는 관료-기계의 등장을 탐문하고, 우리가 어떤 식으로 이 기계의 폐쇄적 조작성에 길들여저 그것이 구조화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지식을 생산하게 되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 사실 제도에 대한 비판도, 제도를 넘어선 문제 제기도 수급이라는 의무통과점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수행 중이다. 정성철·김윤영(2021)이 인터뷰한 수급자들은 "사람 만나 식사라도 할 수 있는" 인간적인 삶, 이 제도에 구속받지 않는 좀 더 자유로운 삶에 대한 바람을 내비쳤다. 한 활동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빈곤층 관리에만 중점을 둘 뿐 빈곤층의 권리와 욕구를 중심에 두고 정책을 설계하지 않는 한계를 비판했다. 모두 빈곤에 대한 해법을 제도 너머에서 새롭게 고민해야 실효성을 지닐 바람이고 비판이다. 사실 삶에서 의존만큼 당연한 행위도 없다. (중략) 건장한abed 성인이라고 의존에서 자유로울까? 그의 삶이 의존과 무관해 보인다면, 이는 살면서 의존할 기회와 자원이 누구보다 그에게 넉넉했음을 뜻한다. 그가 독립적이라 느낀다면, 자신의 의존 경험에 무심했던 까닭일 확률이 높다. 여성의 비가시적인 돌봄노동을 전제로 한 '자립' 개념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이 오랫동안 문제를 제기해 온 이유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의 존재에 기댈 수밖에 없다면, 우리 과제는 '독립'이 아닌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이어야 한다(김병인 2017Abramovitz 2002). 기초법 제정 이후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수급을 당당한 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별로 만나본 적이 없다. 수급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수치심을 감내하거나, 영재처럼 도덕적 빈자 연행을 감수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의존성 논의가 복지 영역에서 특히 만연한 것은 사회복지야말로 후술할 '사회적 빈곤' 의제와 조응하여 등장한 지식과 기술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복지'학' 발전의 주요 참조국인 미국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전해온 사회공학과 개척 서사를 중심에 둔 선별적 역사 서술이 결합하면서 자율적 개인과 독립을 이상으로 삼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자립'을 숭배하고 '복지 의존welfare dependency'을 경멸하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정한 시선을 부과하는 담론 권력으로 자리 잡고, 이들의 사회 안전망을 최소화하는 정치 전략으로 작동해왔다(O'Connor 2001Fineman 2004). / 이러한 흐름에 맞서, 진보적 사회복지학자들은 의존의 보편성을 환기하며 복지 의존에 씌우는 혐의를 거둘 것을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복지 의존을 "인간의 상호의존성을 증진할 수 있는 기초"로 재정의하는 움직임(김병인 2017: 88)이나 돌봄 윤리의 선언만으로 의존이 문제가 된 현실에 균열을 내기란 불가능하다. 복지가 직업화·제도화·산업화를 거치며 '성장한' 역사란, 뒤집어보자면 사회복지 체제 구축에 관여해온 종사자들이 가난한 사람한테 '의존해온' 역사다. 그룹홈의 부모가 영재한테 의존하면서도 그에게 낙인을 씌우듯, 복지 종사자들 역시 빈자에게 기대는 동시에 그들에 대한 심판자를 자임한다. 오늘날까지도 공공부조 체계를 갖춘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능력의 유무에 따라 수급자를 관리하는 제도나, 노동 의지에 따라 자격 있는 빈민과 그렇지 않은 빈민을 구분하는 관행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살면서 '어떤 의존을 하는가'를 묻기 보다, 노동을 척도로 '의존이냐 자립이냐'를 판별하는 흐름이 대세가 되었다. 이때 노동이 갖는 의미는 제한적이다. 직접 물건을 만들어 팔든 자신의 노동력을 팔든, 경제적인 생산관계에 편입된 노동, '밥벌이'가 가능한 노동이 의존과 자립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 노동 의지에 따라 다른 형태의 빈민 통치가 작동했다는 점은, 빈곤이 단순히 부富에 대응하는 경제적 개념이 아니라 품행의 심사장이었음을 뜻한다.사회적 빈곤에 처한 사람 중에 누가 유독 의존적인가? 미국에서는 '복지모welfare mother'라 불리는, 빈곤의 덫에 빠진 채 공공부조에 의지해 자식을 키우는 여성이 빈번히 의존의 '피의자'로 소환됐다(Fineman 2004: 31). (중략) 산업화 이전에 여성은 종속적이긴 했으나 많은 남성과 의존의 조건을 공유했던 반면, 현대에 접어들면서 남성의 우월성과 차별화된 방식으로 '의존성'에 여성성이 덧입혀졌다. 민주주의 혁명 이후 급부상한 시민권이 '독립'과 동의어로 통용되면서, 한때 사회적 관계를 지칭하면서 중립적으로 쓰이던 의존은 도덕적·심리적 기록register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Fraser and Gordon 1994: 315). '독립적인' 생계부양자 남성과 '의존적인' 피부양자 여성의 우열관계가 산업화 시기 이후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의존성에 덧씌워진 여성성의 부정적 함의는 고용 불안정이 심해진 후기 산업화 시기에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남성의 경제적 독립을 상징하는 '가족임금'의 이상이 붕괴되면서, 여성의 경제적 종속은 "명백히 적절한 성인 의존 상태"로 고려되지 않고 논쟁에 부쳐졌다. 특히 "복지 의존성" "약물 의존성"에서 보듯 기존 규범으로부터 일탈했거나 노동시장에 편입되지 못한 집단에 여성화된 의존성이 낙인처럼 씌워졌다(1994: 324-326). 프로카지와 프레이저·고든의 연구는 자율적·독립적 개인이란 모든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 및 산업화 체제와 조응하며 발전해온 담론적 구성물임을 보여준다. 자율적·독립적 개인의 대척점에서 문제적 존재로 부상한 수동적·의존적 인간 역시 자의적이고 우발적인 구성물에 불과하다. 의존을 문화적 구성물로 탈자연화de-naturalising하는 작업은 서구 역사를 낯설게 보는 계보학적 접근뿐 아니라, 인류학자들의 비서구 현장연구에서도 빈번히 발견된다. (중략) 인도 NGO의 상담사들이 여성이 겪는 가정폭력에 대해 서구의 인권 담론이 아닌 인도 고유의 친족 의무를 중심으로 대응하는 풍경도 인격적·의존적 관계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줄리아 코왈스키(2016)는 NGO 활동가들이 인도의 대표적 친족 이데올로기인 '세바seva'를 동원하여 젠더 폭력을 상담하는 과정을 연구했다. 활동가들은 폭력을 개인적 권리가 아닌 가족적 유대의 문제로 규정하면서, 상담 기간 내내 가족 안에서 어긋난disordered 상호의존의 관계를 재위치시키는reorder 작업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모든 가족 성원이 독립적인·자율적인 평등 관계를 맺도록 새로운 형태를 창안하기보다, 돌봄과 위계, 봉사가 어떻게 가족의 일상생활을 구조화하는지, 가족 내 위계 관계 속에서 어떻게 상호의존적이고 호혜적인 관계들을 제대로 조직해낼지를 고심했다. 의존이 친족 프레임 안에서 자연스럽게 수행되는 사회가 이상적임을 말하려는 게 그의 의도는 아니다. 친족의 안팎을 구분하는 배타성, 친족 내 위계를 지지하는 가부장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여성들이 친족의 울타리를 단순히 허물거나 벗어나는 대신 그 안에서 보호받기를 택했는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친족에 의지하며 살아왔는지를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제언이다. 비서구 사회에서 의존이 갖는 맥락을 살피며, 인류학자들은 자율과 저항을 기반으로 행위성agency을 탐색해온 서구 자유주의 프레임의 편협함을 비판했다(Mahmood 2001Ferguson 2013Boyd 2018). 의존이 수동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의존적 개인과 자율적·독립적 개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상호 의존을 통해 인'간間'을 형성하는 모습도 드러난다. (중략) 비서구의 풍경은 어지럽고, 때로 잔혹하다. 특히 발전과 자립·자활이 구국과 해방의 표상과 맞물린 동아시아에서 의존의 자리는 더욱 위태롭다. 하지만 경제적 이해관계에 집중된 희소성 논의는 노동자들이 단위 체제는 물론 사회주의 당-국가 체제와 맺어온 인격적 관계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 1980년대 이후의 구조조정으로 단위에 대한 제도적 의존은 수명이 다했지만, 정서적 의존은 더욱 강렬해졌다. 하둥에 자리 잡은 봉황공장(가칭)은 20여 년의 침체기를 겪다 2005년 말 끝내 정책성 부도를 선언했는데,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당-국가와 대면하기 위해 '인민'의 유령을 불러내고, 당-국가가 한때 그들에게 부여했던 '인민'의 권리를 환기했다. 이때 인민의 권리란 자유주의적 계약보다 노동자들이 당-국가와 맺어온 온정적 유대에 더 가까웠다. (중략) "당시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절대 빈말이 아니었어. 우리 집이 나를 포함해 자식이 여덟이라 '특별히 곤란한 가정'이라고 공장에서 많이 챙겼어. 간부들이 노동자를 진심으로 돌봤지." (중략)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기에 당연하게 여겨졌던 제도적·정서적 의존은 오히려 시장경제 도입 이후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공업기지 둥베이 지방과 노동계급의 몰락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무식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는" 둥베이인과 "독립할 생각을 않고 국가에 의존하려고만 하는" 노동자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제기됐다. 어떤 학자들은 서구의 빈곤 이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접한 의존성dependency을 계획경제의 역사 속에서 재발견했다. "둥베이의 비옥한 자원"이나 종신고용을 의미하는 국유기업의 철밥통 시스템이 노동자들의 의존성을 배양한 문화적 토양으로 거론됐다(尹海潔 2006). 한때 인민의 대표 집단으로 호명되던 노동자, 농민들은 중국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병목이자, '소질素質'이 낮은 문제 집단으로 등장했다(Yan 2003Greenhalgh and Winkler 2005Kipnis 2006). / 노동자들한테는 억울한 일이었다. 한때 너무나 당연했던 단위체제에 대한 의존이 '의존적인 품행'으로 낙인의 대상이 되었는데, 정작 '자립'을 증명할만한 일자리는 별로 없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은 글로벌 정치경제 위기의 예외로 곧잘 언급되지만, 문화대혁명 등 일련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한 저학력·저숙련 중년층은 새로운 중국이 필요로 하는 인적 자본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노동이 생산을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의 자격을 갖춘 "가치 있는" 인민으로 거듭나기 위한 "페다고지적 도구"가 된 것이다(Rofel 1999: 17). / 자력갱생 이데올로기든, 노동에 대한 찬양이든 '그때 그 시절'의 회고담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중의 몸에 들러붙고 말로 옮겨다니고 익숙한 감각으로 자리잡히면서 실직 노동자의 의존을 성토하는 '비난 테크놀로지(Sanscartier 2017)'로 작동했다. 단위 체제는 분명 중국 사회주의의 유산이지만, 20세기 중반의 역사에서는 한국의 풍경과 서로 포개지는 순간도 의외로 많다. 국가 주도적 근대화 프로젝트는 정치적 이념과 상관없이 공통적이었다. 북한에서도, 타이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식민과 전쟁을 거치면서 국가 재정과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민民'을 애국과 개발의 주체로 호명하고, 새마을운동처럼 자립 의식과 노동 의지를 고양하는 다양한 캠페인이 펼쳐졌다. / 도시는 개인이 각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분투하고, 결혼-출산-양육을 통해 노동력을 원활히 공급하고,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부강이 일체화되는 '대중유토피아(벅모스 2008)'의 공간이었다. 도시 질서를 위협하는 '자격 없는' 국민·인민에 대한 통제 역시 한국과 중국에서 비슷하게 등장했다. '사회적' 빈곤은 "유기적 사회질서 구성을 위한 기술들을 고안해내기 위한 개발구역으로, 이 새로운 사회질서는 지금까지 특정한 형태 없이 존재해온 사회적 삶의 영역들을 관리 아래 두는 것"을 목표로 한다(프로카치 2014: 245-246). 정부는 부랑인이나 소매치기, 성매매 여성을 사회문제로 보고, 이들의 문제를 습속 탓으로 돌리면서 대대적인 지도와 통제에 나섰다. 이들을 시설(한국)이나 수용소(중국)에 감금한 채 의식 개조와 노역을 강제하거나, 정착 이주 사업을 통해 국토를 개척할 임무를 맡겼다(김아람 2021박해남 2021추지현 2021디쾨터 2016). 군사정권 시기 도시 하층민을 부랑인이라는 이름으로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갖은 학대와 노역을 일삼은 일명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에야 공론화되면서 피해 생존자들의 진실 규명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사회명랑화사업'의 일환으로 대한청소년개척단을 조직하고, 이들의 강제노역, 강제 집단 결혼, 성폭행 등 인권 유린을 방조한 역사는 최근에야 '서산개척단 사건'으로 알려지며 진상 규명이 시작되었다. 서산개척단의 공식 명칭은 '서산자활정착사업'이었고, 형제복지원은 자활의 기치 아래 모범 표창을 휩쓸며 운영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자활이 없는 노역"이 정부의 보조금과 민간 복지시설의 수익사업을 결합한 '자활사업'을 가능케 했고, 이러한 구조적 폭력이 수용자들의 '자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소준철 2021: 193). 의존할 대상을 곁에 두지 못한 사람들이 도시 밖으로 멀리 쫓겨나거나 안에 감금된 채 '의존'의 혐의를 받고 '자활'을 강요받았던 셈이다. (중략) 이것이 발전국가 시기 한국 내 자활의 유일한 풍경은 아니다. 날것의 폭력을 용케 피한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의 무허가 판자촌에 모여 살았는데, 이들 사이의 상호의존을 도모했던 빈민운동의 역사는 또 다른 자활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략) 연세대학교 부설 도시문제연구소에서 미국의 사회운동가인 솔 앨린스키의 주민조직화 방법론을 배운 뒤 현장에 파견된 훈련생들을 필두로, 수많은 성직자, 대학생, 가난한 사람이 강제 철거에 맞서고, 일상적인 주민조직운동을 벌이며 함께 생존을 도모했다. (중략) 운동화 공장에서 사고로 반신불수 지경이 된 동네 아줌마의 실상을 따지기 위해 "국수 클럽 엄마들이 애기를 한 명씩 들쳐 업고" 기자를 만나러 간 것이 결국 직업병으로 공식 인정을 받아 방송을 타기도 했다. / 오늘날 한국의 주민운동과 의료협동조합 역사에서 널리 회자되는 '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이하 '난협')'은 생활 주변의 자잘한 문제를 주민들이 함께 해결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국수 모임을 함께 했던 한 여성이 술 취한 남편의 폭력 때문에 아이를 유산하게 됐는데 입원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2000년 인터뷰 당시 김혜경은 자신과 국수 모임 엄마들이 성당 신부, 동네 통장, 반장에게까지 연락해 간신히 모금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국가가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나 최소한의 사회 서비스도 제공하지 못했던 시절 빈민 지역에 자리 잡은 야학, 탁아소, 공부방, 도서실, 진료소는 주민운동의 일상적 거점이 되었다. 폭력적인 재개발에 맞선 철거 반대 투쟁이 공동체의 구심을 확보하고, 연대의 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1980-1990년대 빈민 지역 곳곳에서 등장한 생산공동체운동은 이런 흐름의 합류점이었다. 일상의 교류와 연대, 투쟁을 함께해온 사람들이 "가장 일차적인 문제"인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조직이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에 소개된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도 참조 대상이었다. 그렇게 1990년 서울 하월곡동 '건축일꾼두레'와 월곡동 여성생산공동체, 1993년 인천 송림동 '사랑방두레공동체', 1993년 서울 상계동 봉제노동자 협동조합 '실과 바늘', 화정가라오케 1994년 서울 봉천동 '나섬건설' 등 다양한 생산협동조합이 출현했다(최인기 2012: 112-113빈민지역운동사발간위원회 2017: 283-284). / 이러한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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